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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lippo Brunelleschi:1377~1466   필리포 브루넬레스키 설계<피렌체 대성당의 돔>1420~36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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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르네상스 교회당  Pazzi 예배당  1430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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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의 형태와 비례를 강조하기 위해 벽기둥 설치, 수학적인 법칙 이용
르네상스 건축가들은 건축물의 아름다움과 조화를 결정하는 요소는 수학에 달려있다고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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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saccio (Italian, 1401-1428)
The Holy Trinity with the Virgin, St. John and Two Donors. 1426-28. Fresco. Santa Maria Novella, Florence, Italy.
수학적인 법칙에 근거해서 그려진 최초의 그림. 성모가 십자가에 못박힌 아들을 손으로 가리키는 단순한 제스처는 유일한 움직임. 웅변적이고 인상적이다. 지하 납골소.






Leon Battista Alberti :1404~72
레온 바티스타 알베르티 <르네상스 교회: 만토바의 성 안드레아 대성당>1460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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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렌체의 Rucellai 대저택    1460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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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앙 법원 1482 플랑부아양 고딕 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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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임브리지 킹스 칼리지 예배당 1446 수직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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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nato Bramante:1444~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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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몬토리오의 성 베드로 대성당 내  Tempietto 작은신전
예배당의 작은 건물과 장식적인 열주는 고대 신전들이 그러하듯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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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코포 산소비노<산마르코 대성당의 도서관>1536년 르네상스 전성기  베네치아 





르네상스(Renaissance)
라는 말은 재생 또는 부활을 의미한다. 이탈리아인들이 말하는 부흥은 ‘위대했던 로마’의 재생이라는 생각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 르네상스는 단테와 조토의 출생지인 부유한 상업도시 피렌체를 중심으로 성장했으며, 메디치와 파치 가문과 같은 도시귀족이 생겨났다. 중세 시대는 교회라는 건축 안에 회화와 조각이 포함되었다면, 이 시대에는 건축, 조각, 회화가 독립적으로 발전하였다.

 건축은 고대 그리스로마 양식과 새롭고 근대적인 양식의 절충을, 조각은 중세에 금기되었던 누드가 다시 등신대 크기로 재생하였고,  회화에서는 사실주의가 부각되기 시작하였다.

 르네상스 초기에 건축가 필립포 브루넬레스키와 알베르티는 수학적인 법칙에 따라 내부의 형태와 비례를 강조하였다. 이러한 수학적인 법칙에 의해서 그려진 회화로는 마사초의<성 삼위 일체. 성모, 성요한과 헌납자들>그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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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 매너리즘에 이어 17세기에 등장한 바로크.
바로크  하면 떠오르는
어둠과 밝음의 극적인 대조로 작품의 인상이 한층 강렬하다.
마치 무대연출과 같은 작가의 천재적인 구성으로 인해 하이라이트 빛의 주인공을 찾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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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6.26~9.30
덕수궁미술관
http://www.moca.go.kr/deoksugung.j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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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nunciation – is told by Luke (1:26-38): 'the archangel Gabriel was sent by God' to Mary. Gabriel announced to her that she was to give birth to a son, Jesus, who 'will be great, and will be called Son of the Most High. The Lord God will give him the throne of his ancestor David, and he will be king over Israel for ever; his reign shall never end'. '"I am the Lord's servant," said Mary; "may it be as you have said." Then the angel left her.'

<수태고지><스바비아 필사본 복음서>의 한 페이지, 1150년경, 슈투트가르트, 뷔르템베르크 지방 도서관
<수태고지>,12세기 중반, 샤르트르 대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 창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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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mone Martini & Lippo Memmi Annunciation 1333
평화의  상징인 올리브 가지, 처녀성의 상징인 흰 백합, -예수탄생 예고
"아베 그라티아  플레나 도미누스 테쿰"-은총을 가득 받은 이여, 기뻐하여라. 주께서 너와 함께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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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tarpiece of the Annunciation. c. 1430-1432. Tempera on panel. 194 x 194. Museo del Prado, Madrid, Sp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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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nunciation. c.1432-1434. Tempera on panel. 175 x 180. Museo Diocesano, Cortona, Italy. 


Fra Angelico(c.1395-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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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nunciation. c. 1441. Fresco, 176 x 148. Museo di San Marco, Cell 3, Florence, Ita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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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nunciation. c.1450. Fresco, 230 x 297. Museo di San Marco, Corridor, Florence, Ita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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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tticelli, Sandro
The Cestello Annunciation
c. 1489; Tempera on panel, 150 x 156 cm; Uffizi, Flor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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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eyden, Rogier van der (1399/1400 - 1464).
The leading Netherlandish painter of the mid-15th century.The Annunciation (Central panel of a triptych)
  Wood, 86 x 93 cm; Musée du Louvre, Paris t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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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onardo da Vinci. The Annunciation. Detail. c. 1472-1475. Oil and tempera on wood. Uffizi Gallery, Florence, Ita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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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phael. The Annunciation (from the predella of the Coronation of the Virgin). c. 1503-1504. Oil on panel, transferred to canvas. Vaticano, Pinacoteca Apostolica Vaticano, Rome, Italy.

The Annunciation.
1600s. Oil on canvas. Szepmuveseti Muzeum, Budapest, Hung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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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icolas Poussin c.1655. Oil on canvas. National Gallery, London, 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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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nte Gabriel Rossetti. Ecce Ancilla Domini ("The Annunciation"). 1850. Oil on canvas. Tate Gallery, London, 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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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는 주술적인 의미로 그 자료를  정의하고 있다. 그러나, 다양한 종류의 동물과 반복된 형태, 그리고 동물의 싸우는 형상을  보고 짐작하건데, 또 다른 추측을 해 볼 수 있다. 반복된 말의 머리 형태는 당시 그들이 식량으로 혹은 교통수단으로 이용하기 위하여  우리에 가두어진  모습처럼 보여. 또한 싸우는 동물의 역동적인 표현이라든가 부조, 환조로 드러난 동물의 형태는 관찰하여 표현해낸 색채 또한 완벽한  예술작품이다.

 Lascaux, Dordogne (France)
Hall of Bulls, 15,000-13,000 B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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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caux, Dordogne (France)
Hall of Bulls, 15,000-13,000 BCE


 Lascaux, Dordogne (France)
Hall of Bulls, 15,000-13,000 B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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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ascaux, Dordogne (France)
Hall of Bulls, 15,000-13,000 B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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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ascaux, Dordogne (France)
Axial Gallery, 15,000-13,000 B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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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ascaux, Dordogne (France)
Axial Gallery, 15,000-13,000 B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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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caux, Dordogne (France)
Axial Gallery, 15,000-13,000 BCE ceil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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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ltamira, Santander (Spain)
12,000 – 11,000 B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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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ltamira, Santander (Spain)
12,000 – 11,000 B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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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c d’Audoubert, Ariège (France)
Two bison reliefs
Ca. 15,000 – 10,000 BCE

 Chauvet Cave, Vallon-Pont-d’Arc
Ardèche, 30,000 B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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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uvet Cave, Vallon-Pont-d’Arc
Ardèche, France, 30,000 B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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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ch-Merle, Lot (France)
Spotted horses and negative hand imprints
Ca. 22,000 BCE

 Chauvet Cave, Vallon-Pont-d’Arc
Ardèche, France, 30,000 BCE

Chauvet Cave, Vallon
Altamira, Santander (Spain)
12,000 – 11,000 BCE
-Pont-d’Arc
 
Lortet
Antler carvings, ca. 10,000 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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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에 대한 편견을 깨뜨릴 수 있는  선드로잉 조각.
벽에 걸어놓을 수 있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드로잉이 좋았는데, 자료를 찾을 수가 없다.

벽에 걸리는 조각을 처음 봤었던 것이
1998년 김진수 조각가 선생님 작품.
안녕하시죠?
작품 2개 주신다는 거 잊으시면 안됩니다.


2007.5.18~7.22
국립현대미술관 제1전시실, 중앙홀 외에 야외 공간에서도 진행,

http://www.moc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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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나르 브네는 미술의 목적을 ‘미(美)가 아닌 지식을 담는 것’, ‘미술의 역사를 바꾸는 것’으로 설정함으로써 기존의 미술사조와 담론을 뛰어넘는 지적이면서도 급진적인 작품 활동을 벌여왔다. 이번 전시에서는 우리에게 익숙한 브네의 육중한 대형 작품들 뿐 아니라 타르 회화, 석탄더미 작업, 퍼포먼스, 수학적 도식과 도표들을 사용한 회화 및 조각 등 지난 40여 년 간의 대표 작품들을 보여줌으로써 개념 미술가 베르나르 브네의 작품세계를 일목요연하게 이해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이번 전시는 자연환경 속에서 베르나르 브네의 철로 드로잉한 대형조각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무거운 철강이 갖는 무게감을 벗어 던지고, 마치 시원한 필치로써 주저함 없이 휘갈겨진 듯한 그 형태들은 무한한 공간속으로 연장될 것 같은 여운을 남기며 보는 이를 압도하게 할 것으로 기대된다.

베르나르 브네의 작품들은 파리의 에펠탑과 라데팡스, 스트라스부르의 보르도와 베를린의 우라니아 광장, 고속도로 등 세계 주요 공공장소에 설치되어 장관을 연출해 왔으며, 현재 프랑스퐁피두센터, 미국 뉴욕현대미술관 등 세계적인 미술관 60여 곳에 그의 작품들이 소장되어 있다.

1960년대 초반의 초기작에서부터 2000년대의 최근작까지의 주요 대표작 65여 점이 소개되는 이번 회고전은, 개념이라는 것이 작품으로 어떻게 기술되는지, 그 개념의 진화과정이 어떻게 작품으로 변모되는지 일목요연하게 가늠할 수 있게 함으로써 ‘개념미술가’ 베르나르 브네를 만나게 할 것으로 기대된다.



프랑스의 가장 주목받는 작가 중 한 사람인 베르나르 브네(Bernar Venet, 1941)는 현재 파리, 뉴욕 그리고 르 뮈(Le Muy)에 근거지를 두고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1960년대부터 브네는 전례 없이 급진적인 예술적 경험과 미학적 창작에 착수했다. 그는 프랑스 미술의 전통에 싫증을 느끼면서, 미국 형식주의와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의 작품에 매료되었다. 그 후 ‘단의성’이라는 개념을 통해 형식적 급진주의에 대한 탐색을 확실히 제시했다. 1989년부터 그는 ‘비결정적인 선’을 통해 철 조각들의 전통적인 규범에 도전하고 역동적인 현대 조각의 비전을 새롭게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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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로잉이 좋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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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네의 작품을
많은 사람들이 가까이에서 감상하느라 애를 쓰다 다음 전시실로 옮긴다.
인상주의에 관하여 알고있다면, 모두들 작품을 가까이에서만 감상하지는 않았을텐데...
19세기 미술비평가들이 한 실수를, 21 세기의 관객들도 그대로 따르고 있다는 건 슬픈일.
인상주의자들은  화폭에 빛을 그리기위해 빠른 붓놀림을 사용하다보니 가까이에서보면 물감을 발라놓았다는 느낌이 들뿐이다.  인상주의의 작품은 멀리서볼때 놀라우리만치 맑은 하늘과 구름 그리고 물의 느낌을 사진과 같은 완벽한 풍경으로 감상할 수있다.
오랑쥬리 미술관에서 보았던 청수련은 디스플레이가 독특했었다.
각이 지지 않은 방은 사각이 둥그렇게 되어있었고,
그 위로 두루마리 휴지를 풀어놓은 것처럼
벽 네 면을 훑고있었다.  작품을 위해 일부러  만들어 놓은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글씨 클릭~ 모네 자료.

Monet, Claude (b. Nov. 14, 1840, Paris, Fr.--d. Dec. 5, 1926, Giverny)
French painter, initiator, leader, and unswerving advocate of the Impressionist style. He is regarded as the archetypal Impressionist in that his devotion to the ideals of the movement was unwavering throughout his long career, and it is fitting that one of his pictures--Impression: Sunrise (Mus? Marmottan, Paris; 1872)--gave the group his 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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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eoulmoa.seoul.go.kr/


His youth was spent in Le Havre, where he first excelled as a caricaturist but was then converted to landscape painting by his early mentor Boudin, from whom he derived his firm predilection for painting out of doors. In 1859 he studied in Paris at the Atelier Suisse and formed a friendship with Pissarro. After two years' military service in Algiers, he returned to Le Havre and met Jongkind, to whom he said he owed `the definitive education of my eye'. He then, in 1862, entered the studio of Gleyre in Paris and there met Renoir, Sisley, and Bazille, with whom he was to form the nucleus of the Impressionist group. Monet's devotion to painting out of doors is illustrated by the famous story concerning one of his most ambitious early works, Women in the Garden (Mus? d'Orsay, Paris; 1866-67). The picture is about 2.5 meters high and to enable him to paint all of it outside he had a trench dug in the garden so that the canvas could be raised or lowered by pulleys to the height he required. Courbet visited him when he was working on it and said Monet would not paint even the leaves in the background unless the lighting conditions were exactly right.

During the Franco-Prussian War (1870-71) he took refuge in England with Pissarro: he studied the work of Constable and Turner, painted the Thames and London parks, and met the dealer Durand-Ruel, who was to become one of the great champions of the Impressionists. From 1871 to 1878 Monet lived at Argenteuil, a village on the Seine near Paris, and here were painted some of the most joyous and famous works of the Impressionist movement, not only by Monet, but by his visitors Manet, Renoir and Sisley. In 1878 he moved to V?heuil and in 1883 he settled at Giverny, also on the Seine, but about 40 miles from Paris. After having experienced extreme poverty, Monet began to prosper. By 1890 he was successful enough to buy the house at Giverny he had previously rented and in 1892 he married his mistress, with whom he had begun an affair in 1876, three years before the death of his first wife. From 1890 he concentrated on series of pictures in which he painted the same subject at different times of the day in different lights---Haystacks or Grainstacks (1890-91) and Rouen Cathedral (1891-95) are the best known. He continued to travel widely, visiting London and Venice several times (and also Norway as a guest of Queen Christiana), but increasingly his attention was focused on the celebrated water-garden he created at Giverny, which served as the theme for the series of paintings on Water-lilies that began in 1899 and grew to dominate his work completely (in 1914 he had a special studio built in the grounds of his house so he could work on the huge canvases).

In his final years he was troubled by failing eyesight, but he painted until the end. He was enormously prolific and many major galleries have examples of his 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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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6-1923; Orangerie, Par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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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6 (190 Kb); Oil on canvas, 87.6 x 92.7 cm (34 1/2 x 36 1/2 in); The Art Institute of Chic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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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3 (180 Kb); Oil on canvas, 74.6 x 105.3 cm (29 3/8 x 41 7/16 in); Private colle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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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3 (210 Kb); Oil on canvas, 48 x 63 cm (19 x 24 3/8"); Musee Marmottan, Paris


Monet painted this picture of the sun seen through mist at the harbour of Le Havre when he was staying there in the spring of 1872. A sketch quickly executed to catch the atmospheric moment, it was catalogued as Impression: soleil levant when exhibited in 1874 in the first exhibition of the group (as yet described simply as the Soci??Anonyme des Artistes-Peintres). The word `Impression' was not so unusual that it had never before been applied to works of art but the scoffing article by Louis Leroy in Le Charivari which coined the word Impressionnistes as a general description of the exhibitors added a new term to the critical vocabulary that was to become historic. It was first adopted by the artists themselves for their third group exhibition in 1877, though some disliked the label. It was dropped from two of the subsequent exhibitions as a result of disagreements but otherwise defied suppression.

Monet's Impression was not in itself a work that need be regarded as the essential criterion of Impressionism, vivid sketch though it is. There are many works before and after that represent the aims and achievements of the movement more fully. Yet it has a particular lustre and interest in providing the movement with its 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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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rise, sunset
Impression 으로 붙여진 이 작품으로 인하여 impressionism이라는 사조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야외에서 그 순간을 포착해서 그리다보니,
순식간에 단숨에 그려 가까이에서 이 그림을 볼 때면 무엇을 그렸는지 형태를 알 수없고 물감만을 발라놓은 것 같은 그림이 인상주의 작가들의 특징이다. 하지만, 이 그림들을 멀리서 바라보면 이것은 그야말로 사진과 거의 흡사하다시피한 완벽한 풍경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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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te ?Argenteuil
1872; Regatta at Argenteuil; Mus? d'Orsay, Paris

물을 보면 빛을 가장 잘 표현 할 수 있다던 모네의 작품.
여름 화창한 날 파란 하늘이 비친 살아있는 바다의 모습이다.
붓터치로 인해 생생한 현장을 느낄 수 있다.
이러한 대가의 작품들은 어색함이 없어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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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Grenouill?e
1869; Metropolitan Museum of Art
모네의 초기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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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pie
1868-69 (100 Kb); Mus? d'Orsay, Paris  
모네의 초기 작업 중 물이 아닌 눈의 모습이다.
어찌보면 우리나라의 시골 풍경 같단 느낌도 든다, 이름 모를 무명 작가의 시골 산간 초가집 울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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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Red Kerchief: Portrait of Camille Monet
probably late 1860s - early 1870s (50 Kb); Oil on canvas, 99 x 79.3 cm (39 x 31 1/4 in); The Cleveland Museum of 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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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기 좋아서 그냥 올립니다.
라이트 박스에 올려놓고 찍은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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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 디자이너 주
2007.6.5~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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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조소과, 런던에서 사진.
아이디어를 가능케하는데 절대적으로 뒷받침이 되는 그의 약력이다.
상상으로만 생각했던 새로운 공간이 그에 의해서 완벽하게 재현된다.
그의 모습에서와는 다르게 철두철미한 아이디어 스케치북의 모습은 차갑도록 이성적이다. 구겐하임 뮤지엄과 같은 공간을 내놓아도 그의 공간의 이해로 볼 때 가볍게 채워나갈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런 날이 그에게 오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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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
MEMORIES OF YOU
2007_0523 ▶ 2007_0729
http://www.moca.go.kr/

보라매댄스홀-  작품을 보고는 동생의 말이 "마그리뜨의 겨울비' 를 연상케한다고 말한다.
그것도 그런것이 배경없이 그림자없이 벽지를 배경으로
하늘에서 비오듯이 춤추는 남녀가 떨어 내려져 오고 있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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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은 매년 ≪올해의 작가≫전을 개최하고 있다. 이 전시는 국내외 미술계에서 주목할 만한 성과를 올린 한국작가를 선정하여, 그 성과와 가능성을 확인해 보고자 1995년부터 시작된 기획전시이다. 이를 통해 작가에게는 창작의욕을 높이기는 계기를 마련하고, 관람객에게는 한국현대미술의 흐름을 보여주고자 한다. 올해에는 사진, 영상, 설치 등 다양한 매체에 대해 독특한 접근 방식을 보여줌으로써 현대미술의 색다른 방향을 제시하는 정연두(鄭然斗, Yeondoo Jung, 1969~ )를 “올해의 작가”로 선정하였다.
정연두는 그간 현실과 비현실이 교묘하게 교차하는 작업으로 ‘꿈’에 대한 인간의 열정을 다루어 왔다. 특히 그는 〈내사랑 지니〉와 〈원더랜드〉 연작을 통해 평범한 사람들을 만나 그들과 소통하면서 그들의 꿈을 시각화하였다. 그 결과 ‘인생의 주인공’으로 다시금 그들 자신을 돌아보게 하였을 뿐만 아니라, 이 작품을 감상하는 관객들에게도 ‘그들의 꿈’을 되새기게 하였다. 이번 전시는 〈보라매 댄스홀〉, 〈로케이션〉, 〈다큐멘터리 노스탤지어〉 등 세 부분으로 구성된다. 이 작업들은 모두 일종의 무대와 관련된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그 무대의 주인공은 전시장을 방문하는 우리 모두이다. 즉 누구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인데, 그것은 우리 모두가 자신만의 인생이라는 무대에 주인공이고, 그 안에서 꿈을 펼쳐 나가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첫 번째는 〈보라매 댄스홀〉이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조명과 함께 왈츠, 차차차, 탱고 등의 음악이 흐른다. 그리고 벽에는 남녀가 춤추는 이미지로 가득하다. 보라매공원에는 ‘한국체육진흥회’가 운영하는 스포츠댄스 교습소가 있는데, 이 작업은 그 교습소 회원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은 것이다. 그들은 중년의 남녀로서 이미 배도 나오고 머리도 벗어진 상태였고, 웨딩드레스를 반팔로 잘라서 의상을 준비하기도 하였다. 더불어 변조된 왈츠에 맞춰 춤을 추며, 장소도 허름한 비행기 격납고였다. 비록 최고의 모습도, 최고의 의상도, 최고의 음악도, 최고의 장소도 아니지만, 그들은 춤추는 순간을 그들이 생각하는 가장 로맨틱한 순간이라 여기고 최선을 다해 춤을 춘다. 마치 눈만 감으면 세상에서 가장 멋진 곳에서, 혹은 가장 멋진 순간에서 춤을 추고 있는 듯. 작가는 이러한 분위기를 전시장으로 옮긴다. 정연두는 춤추는 사람들 하나하나가 조명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그들의 모습을 벽지에 반복적으로 프린트하여 ‘패턴화’와 ‘익명화’를 시도하고, 그 벽지를 전시장 벽에 부착하였다. ● 두 번째는 〈로케이션〉 사진 연작이다. ‘로케이션’은 영화·드라마 용어로 야외 촬영지를 뜻한다. 영화에 적합한 장소가 실제로 존재한다면 그곳에서 촬영하면 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소품, 조명, 카메라 조작, 특수 기법을 동원함으로써 필요한 장소를 인위적으로 마련해야 한다. 보통 영화에서는 이러한 트릭들을 최대한 감추고자 노력하지만, 오히려 정연두는 이 트릭들을 은근슬쩍 드러낸다. 예를 들어 〈로케이션 #17〉에는 바다의 모래사장이 있다. 그런데 모래가 이상하다. 모래가 아니라 천이기 때문이다. 가을을 암시하는 〈로케이션 #3〉의 은행잎은 유난히 샛노랗다. 그렇게 하기 위해 작가는 잎에 노란색 물감을 칠했다. 유심히 관찰해야만 알 수 있는 사항이다. 〈로케이션〉의 사진들은 마치 현실에 있을 법한 것을 보여준다. 거기에는 이상과 현실, 진짜와 가짜가 공존한다. 사람들이 꿈꾸는 이상적·관념적 세계가 있는가 하면, 현실이라는 번잡하고 구차한 요소도 있다. 그러나 판타지를 제공하는 것은 아니고, 그렇다고 현실을 그대로 투사하는 것도 아니다. 사실상 이상과 현실의 경계에서 모호하게 존재하는 풍경들이세 번째는 〈다큐멘터리 노스탤지어〉이다. 이 작품은 크게 두 가지 물리적 공간으로 나뉜다. 먼저 관객은 거실처럼 보이는 방에 입장한다. 이 곳에는 소파가 있고 벽에는 PDP가 걸려있다. 관객들은 소파에 앉아 PDP에 상영되는 영상을 감상할 수 있다. 이어 이 방을 나서면 넓은 전시장이 펼쳐진다. 그곳에는 영화 촬영 장비와 소품들이 놓여있다. 정연두는 바로 이 곳에서 카메라, 조명, 소품, 장비 등을 이용해 PDP에 나오는 영상을 촬영한 것이다. 그러므로 〈다큐멘터리 노스탤지어〉는 매체적으로 PDP에 나오는 ‘영상’과 전시장에 나열된 장비와 소품, 즉 ‘설치’로 구성된다. 〈다큐멘터리 노스탤지어〉의 영상은 ‘방안’, ‘빈 도시의 거리’, ‘농촌 풍경’, ‘들판’, ‘숲’, ‘운해(雲海)’ 등 6개의 장면(scene)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러닝 타임은 70여분이다. 이 장면들을 촬영하는 카메라는 70분 동안 한번도 움직이거나 정지되지 않는다. 소위 70분 동안 한 컷(cut)으로 진행되는 셈이다. 이렇게 카메라를 계속해서 작동시키기 때문에 시나리오에 의해 연기자들이 연기하는 ‘꼭 필요한’ 부분뿐만 아니라, 부득이하게 한 장면에서 다음 장면으로 바뀌는 과정, 즉 ‘불필요한’ 부분까지 카메라 렌즈에 모두 포착된다. 일반적으로 영화와 드라마가 가지는 매체적 특성 중 하나는 ‘편집’이 가능하다는 것이지만, 〈다큐멘터리 노스탤지어〉에서는 배경, 가건물, 소품 등이 교체되고 설치되는 모든 과정이 그대로 드러난다. ■ 국립현대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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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 특집 유럽 대공습
2007년 여름, 유럽의 미술계는 작열하는 태양만큼이나 뜨겁다. 10년 만에 모습을 드러낸 뮌스터조각프로젝트와 5년 만에 열리는 카셀도큐멘타, 100년 전통의 베니스비엔날레가 6월을 시작으로 동시다발적으로 열린다. 대형 국제 전시뿐만이 아니다. 스위스가 세계 제일로 자랑하는 바젤아트페어 그리고 리스테(Liste), 볼타쇼(Volta Show), 스코프-바젤(Scope-Basel) 등 신생 아트페어까지 열린다. 지금 유럽은 가히 세계미술계 ‘별들의 축제판’이라 불러도 좋다. art in culture와 자매지 art INASIA는 이처럼 ‘완전 소중(일명 완소)’한 유럽 전시를 현지에서 생생하게 보도하기 위해 6명의 스탭들로 유럽특별취재단을 조직했다. 올 여름, 유럽 ‘미술 전쟁’의 전화(戰火) 속으로 한국미술이 돌진한다. 유럽 전역에서 한국작가들의 각종 전시 소식이 줄을 잇고 있다. 그 위세가 융단폭격에 비유할 일이다. 6개국 주요 도시에서 120명의 작가가 펼치는 ‘유럽 대공습’이다. 아시아를 넘어 세계미술의 중심에서 당당히 어깨를 겨루는 한국미술의 문화전쟁. 동시대미술의 문맥 속에서 한국미술의 오늘을 진단하고 내일을 모색하는 의미있는 자리다.


[동아일보]

《10일 개막한 베니스 비엔날레(52회)가 ‘조용한 도발’을 시도하고 있다.

세계 최대의 현대미술축제인 베니스 비엔날레는 그동안 실험작들의 ‘난장’이 펼쳐졌던 무대로 전위적이고 충격적인 시도를 우대해 왔다. 그러나 올해는 ‘실험과 정통의 조화’로, 머리의 아이디어와 손에 밴 감성의 화해로 무게중심을 옮겼다.

개념 미술의 질주에 대한 ‘숨 고르기’이자 “이 자체가 소리 없는 도발이 아니겠느냐”는 평도 나온다.》

○ 세대 아우르는 미술가치 일깨워

아르세날레의 본(本)전시와 자르디니의 국가관 등에 77개국 280여 명의 작가가 참여한 베니스 비엔날레는 11월 21일까지 열린다. 한국은 본전시 참여 없이, 이형구 씨가 한국관 작가로만 참여했다.

미국인 출신으론 최초의 총감독 로버트 스토가 내세운 주제는 ‘감성으로 생각하기, 정신으로 느끼기’. ‘감성과 정신의 화해’라는 주제는 그가 직접 구성한 ‘이탈리아관’에서 잘 드러난다. 그는 40여 명의 작가를 선보이면서 게르하르트 리히터 등 대가와 중견 작가를 대비시켜 세대를 아우르는 미술의 가치를 일깨우려고 했다. 비엔날레에서 홀대받았던 로버트 라이먼 등 미니멀리즘 작가들의 작품이 이채를 띠기도 했으나, 검증된 작가 위주로 전시를 구성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본전시에서 ‘정통’ 사진 작품이 많은 점도 도드라진 특징 중 하나. 50여 명의 참여작가 중 사진을 내놓은 이는 20여 명. 미술의 주류로 부상한 사진에서 파격적 실험이 진행되고 있지만, 베니스에서는 흔들림 없는 기록이나 고발 등 사진의 본령을 강조하는 작품이 많았다. 프랑스 작가 이토 바라다의 ‘퍼블릭 파크’나 얀 흐리스티안 브라운(네덜란드)의 ‘뉴욕 앤드 디 어더 월드’ 등은 ‘평범해서 더 특별하다’는 인상을 준다.

개념 미술에 밀렸던 ‘손의 가치’를 다시 들여다보는 작품도 주목받았다. 가나의 엘 아나추이는 병뚜껑과 철사로 만든 거대한 장막 ‘두사사 2’로, 이탈리아의 안젤로 필로메노는 회화 같은 대형 자수 작품으로 눈길을 끌었다. 미국의 킴 존스는 전시 벽면에 세밀하고 촘촘히 선을 그려 냈다.

올해는 ‘몸의 해체’를 시도한 작품들이 상대적으로 시각적 충격을 안긴다는 평을 들었다. 황금사자상 후보로 언급되는 독일의 이자 겐스켄은 ‘오일’을 통해 숨이 막 멎는 순간의 표정, 칼을 든 채 목이 찢어진 사람의 단말마를 표현해 “파워가 넘친다”는 평을 받았다.

○ “몸의 해체 시도한 작품들 충격적”

트레이시 에민(영국)은 ‘바로드 라이트(Borrowed light)’라는 제목으로 하체를 심하게 비튼 작품을 선보였다. 그는 “내 여성적인 측면인데, 예쁘기도 하지만 하드코어 같다”고 설명했다. 몸에서 성적인 매력과 아름다움을 전면 제거한 이레나 유초바(슬로바키아)의 인공피부 연작, 발가락의 수술 장면을 보여 준 토머 가니허(이스라엘)의 ‘호스피털 파티’도 유사한 질문을 던지는 작품.

비엔날레 특유의 정치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작품도 여럿 나왔다. 프란시스 알리스(벨기에)의 비디오 ‘리허설의 정치학’에서는 피아노와 성악 공연무대에서 전라의 여성이 퍼포먼스를 펼치고 “역사는 되풀이되고 간혹 길을 잃는다”는 메시지 등이 나온다. 폭격으로 폐허가 된 곳에서 축구를 하는 파올로 카네바리(이탈리아)의 영상 등도 반전 메시지를 전하는 작품.

인터랙티브를 시도한 작품은 ‘놀이마당’이 되기도 했다. 스웨덴의 야코브 달그렌은 900여 개의 다트판을 벽에 붙여 놓고 관객에게 다트를 던지게 했다. 그는 “잭슨 폴록의 액션 페인팅과 유사하며 액션의 주체가 작가에서 관객으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중국 차오페이의 ‘에브리 미러클스’는 대형 천막 안에서 관객들이 직접 ‘세컨드 라이프’(가상현실)를 즐길 수 있도록 한 작품이다.

○ 정치-사회적 메시지는 여전

‘체크리스트 르완다 팝’은 40여 명의 작가를 통해 아프리카 현대 미술을 한눈에 보여 주는 특별전으로 주목된다. 신디카 도코로 재단의 컬렉션전인데 왜곡된 여성의 몸을 보여 주는 영상(미네트 배리·에일리언) 등으로 아프리카 미술에 대한 고정 관념을 무너뜨린다.

베네치아=허엽 기자 heo@donga.com

▼ 볼만한 장외 전시▼

빌 비올라 ‘해변 없는 바다’, 이우환 ‘조응’ 시리즈 눈길

비엔날레 기간 중 베네치아 곳곳에서 ‘장외 전시’도 활발하게 열린다.

이 중 가장 주목받은 장외 작품은 백남준 이후 최고의 비디오 아티스트로 인정받는 빌 비올라의 ‘해변 없는 바다’. 7일 처음 선보인 이 작품은 조그만 가족성당 내 3개의 벽면에 설치한 대형 영상물로, 세차게 흘러내리는 물의 장막을 서서히 뚫고 나왔다가 다시 되돌아가는 사람들의 몸짓과 표정을 담았다. 물의 장막이 삶과 죽음을 가르는 벽처럼 보이면서 그것을 드나드는 사람들의 ‘1000가지’ 침묵과 표정이 산 자와 죽은 자의 대화처럼 뇌리에 각인된다. 페기 구겐하임 미술관이 기획했으며 한국의 국제갤러리가 해외 화랑과 수억 원의 제작비를 공동 투자했다.

유럽과 일본에서 인정받는 이우환 씨도 8일 개인전을 열어 설치조각과 ‘조응’ 시리즈를 선보였다. 베네치아 트론체토에서는 제1회 코르니체 아트페어가 10일까지 열렸다. 이 아트페어에는 50여 개 화랑에서 작가 150여 명이 출품했으며 한국의 백송화랑이 고진규 씨 등 3명의 작품을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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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스=연합뉴스) 조채희 기자 = "현대미술의 최첨단을 소개한다는 베니스 비엔날레 원래 취지는 빛이 바래고 정치적 색채만 짙어졌다."

제52회를 맞은 올해 베니스 비엔날레를 바라보는 대체적인 평이다. 지난 7일(이하 현지시간)부터 아르세날레의 본전시와 자르디니의 국가관 전시가 언론에 하나 둘씩 공개되자 국내 미술계 인사들은 대체로 이렇게 평가했다.

이번 베니스 비엔날레 사상 최초로 미국인이 총감독을 맡으면서 어느 정도 예견된 결과였다는 시각도 있다. 예일대 교수이자 유명한 미술평론가 겸 큐레이터인 로버트 스토는 "이분법적인 사고를 탈피해 과거의 미술이 현재의 미술과 조화를 이룰 수 있는지를 보겠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루이즈 부르주아, 게르하르트 리히터, 솔 르윗, 지그마르 폴케 등 생존 원로거장들의 초, 중년기 작품이 이탈리아관 일대에서 대규모로 전시됐다.

비엔날레 원래 취지에 맞게 본전시나 국가관 전시 모두 젊은 작가 비중이 여전히 높았으나 극단적으로 실험정신이 강조된 작품보다는 이미 상당히 정제된 작품이 대다수였다는 지적이 많다.

파격적인 영상이나 아이디어가 톡톡 튀는 설치로 시장터처럼 관객몰이를 하는 이색 작품은 눈에 띄지 않고 차분한 분위기에서 아트페어장에 내놓아도 금방 주인을 찾을 수 있을 듯한 작품이 많다는 뜻이다.

또 총감독이 공약한 대로 신설되거나 보강된 아프리카관과 터키관, 레바논관 등은 일단 좋은 반응을 얻었다.

특히 앙골라, 르완다 등 정치ㆍ경제적 곤궁에 처한 제3세계 미술을 소개하면서 "지금 아프리카에서 왜 미술을 해야 하나"라는 물음을 이끌어내고자 한 아프리카관은 참신하다는 평가를 얻었지만 이런 기획은 이번 비엔날레에 정치적 색채를 강화하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아시아 작가로는 중국과 일본, 인도만 포함됐고 한국을 비롯한 나머지 국가 작가는 본전시에 끼지 못해 이 역시 여러 가지 해석을 낳고 있다.

전시장에서 만난 안미희 광주비엔날레 전시탐장은 "상당히 정치적인 비엔날레"라며 "남미와 아프리카 등 자주 접할 수 없었던 지역의 미술을 보게 돼 흥미롭기도 하다"고 말했다.

실험정신의 퇴색과 정치색 강화는 국가관 전시에서 특히 두드러졌다.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에서 보편적인 공감대를 이끌어내는 소피 칼을 내세운 프랑스 관이나 트레이시 에민을 내세운 영국관 등도 모두 인기를 끌었지만 새로운 작가를 발굴해 내는 전시는 아니었다.

일본관은 히로시마 원폭 지역의 돌 등을 탁본처럼 떠내는 작업을 한 오카베 마사오를 내세워 미묘한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하기도 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인 박신의 경희대 교수는 "이번 국가관 전시를 보고 이제 본격적으로 국가관 전시가 경쟁체제에 돌입했다는 실감이 든다"고 지적했다.

박교수는 "각국마다 너무나 뻔한 주제, 뻔한 작가들을 자신감 있게 내세우면서 그들 작품의 메시지와 개념을 밀고 나가는 측면이 강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한국관 전시에 대해서는 "전시장이 워낙 규모가 작고 외진 곳이라 아쉬움이 남지만 어느 정도 시각적인 인상을 남기는 데는 성공한 것 같다"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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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성 없는 문화전쟁이었다.” 10일 개막한 베니스비엔날레 국가관 행사장을 찾은 미술계 인사들의 한결같은 반응이다. 앞서 언론인 등을 대상으로 한 7일 사전개막 전시관 입구에는 국가관별로 관람객의 숫자가 큰 차이를 보였다. 일부 국가관은 장사진을 이룬 데 반해 그렇지 못한 국가관이 많았다.

한국관 옆에 위치한 독일 국가관은 기다리는 행렬이 20∼30m에 이를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30∼40분은 족히 기다려야 했다. 전시관 앞에 늘어선 행렬의 길이가 바로 그 국가의 문화적 인지도를 말해주는 듯했다.

프랑스와 영국관도 사정은 비슷했다. 특히 눈길을 끄는 국가관은 최근 세계미술시장에서 급부상하는 러시아 중국 인도관이다. 막대한 석유자금으로 미술시장이 급성장하는 러시아관은 전시장 입구부터 인산인해를 이뤘다.

인도와 중국은 스케일로 승부를 걸어 눈길을 끌었다. 주최국인 이탈리아는 두 개의 국가관을 운영하고 있다. 자르디니공원에 위치한 국가관은 본전시 성격의 국제관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번 비엔날레는 아프리카 작가들을 주목하고 있었다. 전시장 중심에 위치한 데다 행사 프로그램 역시 이들에게 초점을 맞췄다. 제3세계 국가에까지 영향력을 확대한 베니스비엔날레는 사실상 아프리카 미술시장의 유럽 편입을 보여주는 듯했다.

관람객 유치를 위한 국가별 경쟁도 뜨겁다. 티셔츠를 비롯한 각종 기념품과 홍보자료를 나눠 주며 관람객을 유치하기 위한 나라별 경쟁이 치열했다. 어떤 국가관은 음료수까지 무료로 제공한다. 기업들의 산업박람회를 방불케 한다.

베니스비엔날레의 성공요인으로 꼽는 것 중 하나가 국가 간 경쟁을 유도하는 독특한 전시관 운영시스템이다. 각 국가는 그들의 국가 전시관을 전폭적으로 지원한다. 김정헌 문화예술위원회 위원은 “국가관 커미셔너 제도가 국가관리를 부추기고 있다”고 진단했다. 형식상 독립적인 개인 창작활동이 치열한 국가 간 문화전쟁으로 이뤄지는 것이다.

설치조각가 이형구씨의 개인전 성격으로 운영되는 한국관도 사정은 비슷하다. 우리나라 대표선수라는 차원에서 문화예술위원회 등이 적극 지원하고 있다.

행사장 뒤편에 마련된 한국관은 위치 조건이 열악해 관람객 유치에 있어서 늘 손해를 보고 있다. 하지만 한국관을 들른 영국에서 온 아트스폰서 안토니 포셋씨는 “이형구의 작품이 ‘가상의 실제놀이’를 보는 것 같아 즐겁다”고 높은 관심을 보였다. 구겐하임 측에선 벌써부터 이형구 작품 구매의사를 타진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형구 작품은 ‘톰과 제리’라는 가상의 애니메이션 이미지를 3차원 공간에 실재하는 것처럼 구현해 가상과 실재의 경계를 모호하게 하고 있다. 쇼케이스엔 그 뼈대를 전시해 박물관처럼 전시하는 등 사람들로 하여금 톰과 제리가 실제 존재한 것처럼 착각하게 만든다. 사이비 고고학의 재미가 담겨 있는 것이다. 일부에선 이씨의 스토리텔링이 너무 사변적이라는 비판도 있다. 그러나 미술가도 문화전사라는 점에서 거부할 수 없는 시대 흐름이라는 항변이 더 설득력을 얻는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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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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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나카시마

1905년 미국 워싱턴 주의 스포케인 (Spokane)에서 일본인 부모 아래 태어난 나카시마는 1929년 워싱턴 대학교 (University of Washington)에서 건축학 학위를 딴 후 파리의 에콜데보자르 (École Américaine des Beaux-Arts)에서 수학했으며 1930년 M.I.T.에서 건축석사학위를 받았다. 이 후 파리, 도쿄, 인디아에서 경험을 쌓은 작가는 1940년도에 다시 미국으로 돌아와 1943년 펜실베니아주로 옮겨 뉴 호프에 정착하여 남은 여생을 작품 디자인과 생산에 주력하였다.


나카시마의 가구작품은 나무에서 자연적으로 생겨나는 결과 선을 그대로 살리면서 심플하지만 한층 격이 높은 실용성이 겸비된 것들이었다. 코노이드 시리즈, 미라 시리즈 등 여러 종류의 의자, 테이블, 소파 및 전등까지 그의 작업은 집안의 구석 구석에 안착되는 모든 것들을 포용했다. 건축물과 가구가 함께 어우러지는 실용성을 따지는 디자인에 애착을 가졌던 작가는 사람의 사용으로 인해 묻어나는 손때와 시간의 흐름에 의해 자연스레 생기는 흔적을 소중히 생각했다. 또한 그는 동양적인 절제된 선 스타일의 미감이 가미된 실용적이고 아름다운 작품들을 50여 년 동안 선보였다.


■세르주 무이

1922년 파리에서 태어난 세르주 무이는 파리의 응용미술학교 (Ecole des Arts Appliqués)에서 은세공 마스터 자격증을 딴 후 은세공인 겸 조각가였던 가브리엘 라크로아 (Gabriel LaCroix) 밑에서 훈련을 받았다. 그리고 1945년, 그의 나이 23세에 응용미술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동시에 자신의 스튜디오를 열어 본격적인 작업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무이가 1950년대에 디자인한 조명기구들은 벽에 부착하거나 바닥에 세우는 램프들로, 다리가 여러 개 달린 커다란 곤충을 연상시키는 독특한 형태를 띠었다. 그는 기계 생산에 의존하지 않고 램프 하나하나를 직접 제작했으며, 조각적이면서도 공간 속에서 운동감을 느끼게 하는 형태를 추구했다. 그의 램프들은 특히 전구를 덮는 알루미늄 머리 부분에 꼭지모양의 돌출이 난 것이 특징적인데, 이는 전구의 반사광을 높이는 역할을 했다. 소박한 검정색의 사용과 산뜻한 형태, 그리고 구조적 효율성이 그가 만든 램프들의 공통된 특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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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의 말...

창조의 과정과 그것이 공예와 맺는 관계는 암흑 같은 물속으로 무한정 빠져드는 미스터리와도 같다.

문제를 보면 해답을 찾고, 해결책을 찾아 공간에 맞는 물건을 만드는 것, 미적 감각으로 인간의 욕구를 채우고 자연에겐 소중한 재료를 사용하는 것, 유용한 것들로 작은 해답을 얻는 것, 이 모든 것이 내가 목공인으로서 일찍이 경험해온 나의 운명이었다.

장인은 물건이 쓸모 있는 기능을 갖춘 한에서 아름다움을 생산하기 위해 일한다.

그러나 그것이 반드시 예술일 필요는 없다.

나는 "진보"라는 잔인한 증후군과는 거리가 먼 로우 테크놀러지의 길을 추구한다. 나는 평생 미를 위해 싸워왔으며 아름다움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 세상에서 그것을 창조하려 했다. 나의 노력은 큰 불빛 안의 작은 몇몇의 점에 불과하지만, 거대한 빛으로 자랄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미와 가장 위대한 의식은 형이상학적 세계에 의존한다.

과학과 테크놀러지는 진실로 접촉하지 않은 채 이 세상에 근접할 뿐이다.

공예는 이 비범한 현상의 일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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